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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만한 젊음의 날들

30_무진기행

by 또NEW 2015. 3. 17.

 


무진기행

저자
김승옥, 구재진 (엮음) 지음
출판사
사피엔스21 | 2012-02-13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196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 김승옥, 도시의 문명과 개인의 내면...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얼마전 공무원 시험 국어 기출 문제를 풀다가 "What the hell"을 외치게 만든 문제가 있었으니, 그 지문이 무진기행이었다.

 

다음 글의 "실의의 무진행" 당시에 '박군'의 몇 살이었으며, 현재 내 나이는 몇 살인가? (2009년, 국가직 9급)

 

이런 어처구니 없는 문제였는데, 더 황당한 것은 지문을 몇 번을 읽었는데 나는 도무지 계산을 해 낼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4년 전, 나는 내가 경리 일을 보고 있던 제약회사가 좀 더 큰 다른 회사와 합병되는 바람에 일자리를 잃고 무진으로 내려왔던 것이다. 아니 단지 일자리를 잃었다는 이유만으로 서울을 떠났던 것은 아니었다. 동거하고 있던 희만 그대로 내 곁에 있어 주었던들 실의의 무진행은 없었으리라.

"결혼하셨다더군요?"

박이 물었다.

"흐응, 자넨?"

"전 아직. 참 좋은 데로 장가드셨다고들 하더군요."

"그래? 자넨 왜 여태 결혼하지 않고 있나? 자네 금년에 어떻게 되지?"

"스물아홉입니다."

"스물아홉이라. 아홉수가 원래 사납다고 하대만. 금년엔 어떻게 해 보지 그래?

"글쎄요."

박은 소년처럼 머리를 긁었다. 4년 전이니까 그해의 내 나이가 스물아홉이었고 희가 내 곁에서 달아나 버릴 무렵 지금 아내의 전 남편이 죽었던 것이다.  

 

이게 문제집에 나온 지문이었다. 난 머리가 나빠서 이 지문만으로는 도대체 어디까지가 4년 전 일이며, 어디까지가 현재인지 구별할 수가 없었다. What the hell을 외치며 앞 뒤 문맥이 더 있다면 이 문제를 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조만간 <무진기행>을 꼭 읽어버리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던 중에 팟캐스트 북라디오에서 무진기행 편이 있기에 우연히 들었는데 예찬을 하는 거다. 한국 현대문학의 고전이라며... 내가 알던 그 <무진기행>이 맞는건가 갑자기 궁금해져 오늘 도서관에 들른 차에 읽어봤다.

 

 

오래 전, 고등학생 때 읽었을 때에도 이걸 왜 읽어야 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었다. 이번에도 내게는 그저 승승장구 하고 있는 중년의 일탈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 이 이야기의 어느 부분에 포인트를 두고 읽어야 이게 고전이 되는 건지 의구심이 생길 뿐이었다. 뭔가 시대를 관통하는 보편성이라는 게 있어야 하는건데, 내가 놓친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고민을 많이 해 봤다.

불륜? 이건 낯설지 않은건데, 유독 이 소설이 내게 불편하게 느껴졌던 이유가 무엇일까? 아무래도 영화나 드라마 속의 불륜은 3인칭의 타자로서 그들을 바라보니까 남의 일이다. 그냥 그럴 수도 있지 싶은 건데, 이건 아무래도 1인칭 남성 화자의 포지션에 서야 했던 게 그 이유 중 하나였던 것 같다. 이 소설을 예찬하는 독자층 중에 남성이 많은 것도 그런 이유 아닐까? 그들은 공감할 수 있었던 거다.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그 부분을.

결국에 이 이야기는 주인공 윤희중이라는 사람이 어쩌다 부유한 부인을 얻은 덕에 승승장구하게 되던 차에 고향이자 찌질했던 과거의 기억을 안개 속에 품은 무진으로 잠시 머리를 식히러 내려가게 되고, 그곳에서 바둑판 흑백돌처럼 대비되는 두 인물 후배 박, 친구 조를 만나고, 흑백돌 사이에 껴 있던 하인숙이라는 여자를 만나는데, 처음 만나 하룻밤을 보낸 여자를 느닷없이 '사랑'한다고 느꼈다가 얼른 돌아오라는 아내의 전보를 받고 부랴부랴 안갯속 마을을 떠나며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건데..... 그래, 백 번 양보해서 그 사랑이 진짜였다고 친다해도, 그래서 사랑보다 결국 현실을 택하고 말았던 자신 속의 속물을 마주하고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쳐도, 그리고 이제 나이를 좀 먹었더니 나는 윤희중이라는 이 남자의 처지와 심리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여전히 이 소설을 왜 청소년들이 읽어야 하고 무엇을 배워야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는 거다.

그래서 도대체 학교에선 이 소설의 주제를 뭐라고 배우고 있는지 검색을 해 봤다. 정말 난 도무지 모르겠어서 검색을 했다.

 

요약: 1964년 <사상계>에 발표된 김승옥의 단편소설. 주인공의 무진으로의 귀향과 서울로의 복귀 과정을 통해 진정한 자아의 욕망을 저버리고 현실과 타협함으로써 일상을 유지하는 현대인의 자기 반성을 그려낸 작품

 

 갈래 : 단편소설 /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 배경 : 1960년 무진(권태와 단조로움, 절망의 추억만을 불러일으키는 공간) / 주제 : 일상의 부정을 통한 새로운 깨달음과 새로운 삶의 모색

이 소설은 현실적으로 출세한 인물임에도 젊은 시절의 번민과 고통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고독한 존재인 나(윤희중)가 무진으로의 여행을 통해 현실세계에서 잊고 있던 자신의 내면을 발견하게 되지만, 결국은 다시 현실공간인 서울로 되돌아오고 만다는 내용이다.                                                                            

                                                                                                              <<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

  

 

나는 어리둥절하게 이 문장들을 쳐다보고 쳐다보다가 유레카를 외쳤다. 이건 순도 100% '안개'의 소설이다.

안개 때문에 뿌옇기만 한 09년도 국어 문제부터 지식백과의 설명까지 도무지 알 수 있는 게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야 말로 몽땅 안갯속이다. 오늘 나는 이 소설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내 문학적 소양이 부족한 탓인걸까 깊은 고민을 했었는데, <무진기행>은 그야말로 나를 깊은 안갯속으로 데려간 소설이었다. 그래, 그냥 내가 무식한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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