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가진 수정테이프 조립하기

어젯밤, 어마어마한 삽질이 시작되었다.

문구계의 최약체라 불리는 수정테이프가 톡하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순간, 너와 나의 비극은 시작된거다. 별 생각없이 틀린 글씨에 수정테이프를 긋는 순간 또르르 감기지 않고 주르르 밖으로 흘러나오는 투명한 줄이여.............. 아놔. 아직 새거란 말이다!!!

 

병원에서 비품으로 쓰던 수정테이프는 오늘 나의 것과 비슷하게 생겨먹었으나 연두색 속옷에 겉옷은 앞뒤 구별없이 완전 시스루여서 딱봐도 약해보였다. 책상마다 굴러다니던 이 아이들은 기대에 부응하듯 툭하면 줄줄이 테이프를 게워내거나 뭔가 잘 안되기 일쑤였고 누군가 고쳐보려고 노력한 듯 반쪽으로 분해되어 굴러다니는 것이 일상이었다. 밤근무 때, 시간이 남은 누군가는 망가진 수정테이프들을 몽땅 분해해 고치기도 하였지만, 몹시 예민했던 내 눈에 발각되는 불쌍한 아이들은 몽땅 가차없이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그랬던 나인데.....

아직 새거고, 이건 내꺼고.... 야밤에 분해를 시작했다. 일단 과감히 앞판을 뜯어내고, 소심하게 관찰을 시작했다. 떨어뜨렸으니 뭔가 부서진걸까 의심. 크게 부러질만한 내용물은 없어보이는데 싶었다. 처음부터 몽땅 꺼내버리고 나면 Ctrl + Z 따위 여기선 사용할 수 없는 현실 세계이므로 신중하게 관찰해야했다. 그러다 발견하게 된 돌아다니는 이 놈!! 아주 작은 놈!!

누구냐, 넌??!!!  

 

 

그리고 도르래 한 쪽씩을 조심스레 꺼내 보았지만 도무지 이 아이가 어디서 온 아이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한 번 튀어나온 테이프를 되감지 못하고 뱉아내는 걸 보니 입구 쪽 도르레랑 관련이 있는것 같긴한데... 그리고 최초 발견 위치는 위 사진의 파란색 세모입 부위와 바퀴모양 도르래 사이에서였으므로 요 어디쯤이 이 아이의 출처라고 짐작하고 계속 시도해보았으나 번번히 실패. 아놔 ㅠ.ㅠ

 

그리고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네이버 검색을 시도했으나, 여느때와는 다르게 실패로 끝이 났다. 워낙 여러 종류의 수정테이프가 있었던 탓도 있고, '성격나빠지니 그냥 버리셈'과 같은 조언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기가 생겼다.

 

 

 

모델명으로 검색을 해볼까 하다가 요것과 비슷한 이름을 가진 아이가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오래전 병원에서 사용하고 리필로 갈아서 사용해야지 하고 남겨놓았던 아이!!

 

 

 

이 아이, 이 아이!!!!

얘는 길쭉이지만, 모델명도 비슷하고 전반적인 땟깔도 비슷하니깐... 얘를 분해해서 쪼끄만 바퀴를 한 번 찾아보자 싶었다.  

 

 

 

역시나 입구쪽에서 발견된 작은 바퀴!!!

그래서 또 다시 한 참을 제자리를 빙글빙글 돌며 몇 번을 끼우고 실패하기를 반복하다가 이건 아닌거 같음...... 하며 포기. 아놔, 누구냐, 넌!!!!!

 

 

 

포기하려던 찰나, 기적적으로 발견한 자리가 있었으니!!!!

에잇, 모르겠다 하며 몽땅 다 끄집어 냈다. 그랬더니 애초에 생각했던 입구 쪽이 아닌 가운데 쪽에 뾰족히 올라와 있는 작은 기둥 하나를 발견, 별 기대없이 구멍을 맞춰 끼웠는데..... 오랏?

 

 

 

그리고 큰 바퀴 아래 있던 톱니 바퀴를 제 자리에 넣었더니 톱날이 맞아졌다. 오호호호!!! 이래서 유레카를 외치는거구나!!! 톱니 바퀴를 돌려 맞춰가며(세 톱니가 딱 맞아지면 역회전이 안되므로 수정테이프를 정확하게 제 위치로 잡으려면 큰 톱니를 빼서 조금씩 돌려가며 자리를 잡아야 하더라고...) 다시 조립.

  

 

 

 

쨘~~!!! 완성!!

장장 30분 동안 이 찌끄만 놈과 씨름한 끝에 결국 해냈다.

이젠 수정테이프 따위 두렵지 않다며 ㅋㅋㅋㅋ 수백번 떨어져 망가진대도 난 이제 과감히 너의 배를 열어 살려낼 자신이 있다고!!!

 

덕분에 하던 공부는 꽝!

뿌듯함만 가슴에 품고 잠자리에 들어 생각했다.

아무도 답을 주지 않아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 그리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용기, 그게 필요한 것이라고.

배가 고프고 일이 없으면 누구나 소크라테스가 될 수 있는 것 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