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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만한 젊음의 날들

29_덕혜옹주

by 또NEW 2015. 3. 7.

 

 


덕혜옹주

저자
권비영 지음
출판사
다산책방 | 2009-12-14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비극적 삶을 살다간 조선의 마지막 황녀가소설을 통해 다시 살아난...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소셜커머스에 올라온 대마도 상품을 구경하다가 <덕혜옹주>를 마주쳤다. 몇 번이나 읽을 뻔 했던 이 소설을 이제야 읽게 되었다. 대마도 당일 여행을 3만원대로 다녀올 수 있는 상품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덕혜옹주는 고종의 막내딸로 조선의 마지막 황녀라고 한다. 일제 치하에서 당시의 황족들은 일본에 볼모로 끌려가 있었는데 어린 나이의 덕혜옹주는 황가에 이름을 올리지도 못하고 있다가 고종이 죽고 난 이후에 황적에 오르게 되고, 황족이 되자마자 일본으로 보내지게 된다. 조선 황녀의 모진 삶을 그린 소설이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의 시작부터 뭔가 불편했다. 내 머릿속의 고종은 힘 있는 외세에 빌붙어 어떻게든 혼자만 살아보려고 했을 뿐 나라야 어찌되든 향락에 빠져 흥청망청하다가 결국엔 이 나라를 비극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나쁜 놈이었는데, 소설의 처음부터 비련의 왕으로 그려지고 있으니 코드가 맞지 않았다. 거기다 판에 짜여진 듯 단조로운 등장인물들 간의 관계가 심심했고, 덕혜옹주의 결혼을 기점으로 이야기 전개가 조증과 울증을 넘나들 듯 두서없더니 정신병원을 탈출하는 짧은 스릴러씬을 거쳐 갑자기 죽어버리는 이야기는 끝까지 좀 실망스러웠다. 소설 초반의 장황하고 자세한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에 비해서 소설 중, 후반으로 가면서 이야기의 분량을 줄인 것은 이야기 전개를 빠르게 하기 위한 의도된 장치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연결고리들이 빠져 매끄럽지 못한 느낌이었다. 비전문가의 입장에서 볼 때, 프로페셔널한 소설의 느낌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는 재미있었고, 생각할 거리가 있었다.

 

특정 시점에 일어나는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이야기가 아닌, 한 사람의 생애 전반을 다루는 이야기는 슬픈 이야기이다. 결국은 사랑이라는 건, 사람이라는 건 영원한 것이 아니기에 '상실'이라는 것을 겪을 수 밖에 없는 것이고 누구나 '상실'에 대한 슬픔의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감을 이끌어내기 쉽다.

여기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조선의 황녀의 이야기는 많은 것을 잃는 이야기다. 아버지를 잃고, 나라를 잃고, 어머니를 잃고, 자존심을 잃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황녀이지만 황녀로 살지 못했던 그녀의 비극적인 삶이 슬프다고 말한다. 그런데 덕혜옹주가 목숨을 구해주고 나인으로 곁에 두었던 복순이의 삶이 덕혜옹주보다 훨씬 더 비극적이다. 아버지가 멀쩡하게 살아 있었음에도 그녀는 아버지를 잃었다. 독립운동을 하던 아버지는 가족들이 해를 입을까봐 가정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어머니가 멀쩡하게 살아 있었음에도 어머니를 잃었다. 얼떨결에 궁으로 들어오게 된 그녀는 단 한 번 어머니를 만났을 뿐, 지척에 있는 어머니를 그 이후로 만날 수도 없었다. 옹주의 나인으로 일본에 함께 온 이후로는 마음대로 집 밖을 다녀본 적도 없었고, 어느 날 갑자기 강간을 당해 정조를 잃었고, 자기를 거두어준 친절한 일본 남자의 아이를 제 손으로 낙태를 시키며 아이를 잃었고 (이 이야기도 무척 이해가 안 갔다), 결국엔 옹주를 위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고종이 살아있을 때 덕혜옹주와 맺어주려고 했던 김장한의 이야기도 덕혜옹주보다 비극적이다. 사랑에 빠졌던 그는 평생을 덕혜의 그림자로 살겠다고 다짐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그녀의 주변을 떠돌기만 할 뿐이니까. 일부 나라를 팔아 먹은 놈들을 제외한 모두가 힘들었던 시대였다. 대다수는 식민지국의 백성으로 파리 목숨보다 못한 목숨을 겨우 부지하며 살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황녀이기에 잘 먹고 우아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던 식민지국 옹주의 배부른 고집과 불평과 우울증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던 소설 속의 그녀의 삶. 나는 이게 왜 그렇게 슬퍼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재밌게 읽어 놓고 딴지를 거는 셈이 됐는데, 어린 황녀의 자존심, 당당한 모습은 참 보기 좋았다. 그 시대 황족들은 그렇게 살았구나 하는 정도로 읽어볼 만 한 소설. 그래도 아쉬운 점이 많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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