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_고민하는 힘

 


고민하는 힘

저자
강상중 지음
출판사
사계절 | 2009-03-24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불안과 고민의 시대, 일본 100만 독자를 일으켜 세운 책! 재...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문명이 발전하면 할수록 인간은 구원받기 힘든 고립의 상태에 이른다.'는 문제 의식을 공유했던 막스 베버와 나쓰메 소세키를 통해 '시대는 거친 격류처럼 흘러갑니다. 스스로 그 흐름에 올라타지만 그 흐름에 휘말리지 않고 시대를 꿰뚫어 보겠어'라는 그들의 시선을 따라 어떻게 이 시대의 문제들을 고민해야 할지 화두를 던져 주는 책이다. 재일 한국인 2세로서 어려서부터 정체성에 대해 고민했던 강상중 교수는 막스 베버와 나쓰메 소세키를 읽으며 방황의 시기를 이겨나갔다고 한다. 대학교에 다닐 때 어느 친구가 "베버와 소세키가 닮았어"라고 했던 낯선 말을 어느날 맞는 말이라고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제국주의의 시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를 살았던 일본과 독일의 두 지식인의 사유를 통해 20세기 말, 21세기 초기를 살고 있는 오늘날의 고민을 자아, 돈, 지식, 청춘, 믿음, 일, 사랑, 죽음 등의 몇 가지 카테고리에 대입해 보는 재미있는 글이다.    

 

데카르트의 코기토 에르고 숨으로 부터 시작되는 자아에 대한 고민. '우리'가 '나'가 된 것은 베버와 소세키가 살던 그 시기부터였나보다. 세계가 해체되고 자아가 과잉되면서 개인주의가 생겨났다. "자아의식은 결국 신경쇠약을 낳는다. 신경쇠약은 20세기 모두가 공유하는 병이 될 것이다."라고 나쓰메 소세키가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는 그의 예언대로 크든 작든 신경쇠약을 앓으며 살아가고 있다. 이 자아의식을 잘 컨트롤 하면서 타인과의 관계를 어떻게 하느냐가 관건이다. 이 지점을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여기서부터 내 눈이 뜨이는 기분이었다. 지금껏 나를 들여다보며 나를 찾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건 시작에 불과한 것이었다. 내가 앞으로 가야할 길은 이제 타인과의 관계속에서 나의 포지션을 잡아가는 게 필요하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강상중 교수는 "'자기의 성'을 쌓는 자는 반드시 파멸한다'는 말을 인용해 관계 속에서만 자아가 성립한다고 말했다.

 

당시엔 '돈'이란 것을 소설의 주제로 쓰지 않았던 시기였다고 한다. 돈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속물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나쓰메 소세키는 여러 소설에서 '잔뜩 악취를 풍기는 속물의 재산가'를 그려냈다. 그리고 막스 베버는 '국가가 부강해진다'는 말은 그 과정에서 '국가 내에 무수히 많은 벼락부자가 생긴다'고 말했다. 지금은 그때의 신흥 부르주아들이 공고히 국가의 중심에 뿌리내렸다. 이제는 이 '돈'이라는 것을 어떻게 잘 벌고, 어떻게 잘 쓸 수 있을까에 대해 배워서 돈의 노예가 되지 않는 것이 과제가 아닐까.

 

"인식의 나무 열매를 먹은 사람은 다시 뒤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라고 막스 베버는 말했다고 한다.

아는 것인가? 하는 물음. 왜인가? 하는 물음. 가상의 세계인가 실재의 세계인가 하는 물음. 던져야 할 물음이 너무 많다. 인식의 열매가 독이 될지 약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고민하는 힘이 필요하다.  

 

청춘의 착오와 같은 것을 되풀이하며 사는 것을 청춘적인 원숙함이라고 규정했는데, 그 말이 참 멋졌다. 그렇게 나이먹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해볼 것.

 

믿음이란 자기를 믿는 다는 것이며 이는 자기가 교주가 된다는 것이다. 이 거창한 믿음이라는 것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인용하며 "일반적으로 사람은 자유를 동경한다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습니다. 자유로부터 도망쳐 '절대적인 것'에 속하고 싶어하기도 합니다."라고 얘기했다.

 

사회속에서 자기 존재를 인정 받기 위한 일.

 

그리고 사랑. 지금이 연애 전성시대라고 하며 역설적으로 오히려 사랑이 없는 게 아닌가 하며 충고했다.

"사랑에 대해 게으르지 마라. 사랑은 그때 그때 상대의 물음에 응답하려는 의지입니다. 사랑의 모습은 변합니다. 행복해지는 것이 사랑의 목적이 아닙니다. 사랑이 식을 것을 처음부터 겁낼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대학에 들어가 교양과목인 자연과학개론의 첫 수업에 출석했을 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출석을 부른 다음 교수는 "나는 지금 자네들의 출석을 불렀네. 이제 수업에 나오지 않아도 되네. 1년 동안 집에 틀어박혀서 생각하고 오도록" 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충격적인 문장이었다. 물론 강상중 교수가 대학을 다닐 때는 꽤 오래전이다. 그런 낭만이 있었던 시대를 살았던 게 부러웠다. 이 독서 기록은 그 어느때보다도 두서없지만 고민 고민 고민. 고민의 힘을 믿어보고 싶다.

 

 

  • 지성의 전당 2019.01.17 20:58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안녕하세요.
    저는 지성의 전당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고민하는 힘 글이 있어서 댓글을 남겨 보았습니다.
    제가 또 댓글을 달았다면 죄송합니다.
    인문학 도서인데,
    저자 진경님의 '불멸의 자각' 책을 추천해드리려고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와 죽음에 대한 책 중에서 가장 잘 나와 있습니다.
    책 내용 중 일부를 아래 글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제 블로그에 더 많은 내용이 있으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정보를 드리는 것뿐이니
    이 글이 불편하시다면 지우거나 무시하셔도 됩니다.
    ---

    인식할 수가 있는 ‘태어난 존재’에 대한 구성요소에는, 물질 육체와 그 육체를 생동감 있게 유지시키는 생명력과 이를 도구화해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의식과 정신으로 나눠 볼 수가 있을 겁니다.

    ‘태어난 존재’ 즉 물질 육체는 어느 시점에 이르러 역할을 다한 도구처럼 분해되고 소멸되어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육체를 유지시키던 생명력은 마치 외부 대기에 섞이듯이 근본 생명에 합일 과정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육체와의 동일시와 비동일시 사이의 연결고리인 ‘의식’ 또한 소멸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에 보충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러한 총체적 단절작용을 ‘죽음’으로 정의를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존재의 일부로서, 물질적인 부분은 결단코 동일한 육체로 환생할 수가 없으며,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의식’ 또한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정신은 모든 물질을 이루는 근간이자 전제조건으로서, 물질로서의 근본적 정체성, 즉 나타나고 사라짐의 작용에 의한 영향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타날 수도 없고, 사라질 수도 없으며, 태어날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는 불멸성으로서, 모든 환생의 영역 너머에 있으므로 어떠한 환생의 영향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신에 대한 부정할 수가 없는 사실이자 실체로서, ‘있는 그대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본체에 의한 작용과정으로써 모든 창조와 소멸이 일어나는데, 누가 태어나고 누가 죽는다는 것입니까?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을 하고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윤회를 합니까?

    정신은 물질을 이루는 근간으로서의 의식조차 너머의 ‘본체’라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윤회의 영역 내에 있는 원인과 결과, 카르마, 운명이라는 개념 즉 모든 작용을 ‘본체’로부터 발현되고 비추어진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자신을 태어난 ‘한 사람’, 즉 육신과의 동일성으로 비추어진 ‘지금의 나’로 여기며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착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한 사람’은 스스로 자율의지를 갖고서,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행동한다고 믿고 있지만 태어나고 늙어지고 병들어지고 고통 받고 죽어지는, 모든 일련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어느 것 하나 스스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책임을 외면하기 위해 카르마라는 거짓된 원인과 결과를 받아들이며, 더 나아가 거짓된 환생을 받아들이며, 이 과정에서 도출되는 거짓된 속박, 즉 번뇌와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환영 속의 해탈을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거짓된 자기견해 속의 환생과 윤회는, 꿈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더불어서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정의를 내리려면 반드시 비교 대상이 남아 있어야 하며, 대상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는 그 어떠한 자율성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는 꿈속의 꿈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뚜렷하고 명백하다 할지라도 ‘나뉨과 분리’는 실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나’에 대한 그릇되고 거짓된 견해만을 바로잡았을 뿐입니다.

    https://blog.naver.com/ecenter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