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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만한 젊음의 날들

33_달콤한 작은 거짓말

by 또NEW 2015. 3. 27.

 


달콤한 작은 거짓말

저자
에쿠니 가오리 지음
출판사
소담출판사 | 2010-11-02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같은 장소로 돌아가기 위한 아내와 남편의 '작은' 거짓말 에쿠니...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을 다시 펼친 이유는 전공 시험 이야기를 하다가 환경 파트엔 감자의 싹에서 나오는 독 같은 것도 나온다는 이야기를 허간이 했기 때문이었다. 이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입에서 튀어 나와야 하는 답인데, 금방 생각이 나지 않아 한참을 발을 동동거렸고, 허간이 솔 뭔데... 라고 했을 때야 "솔라닌!" 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는 게 충격적이었다. 이 소설책은 오래 전, 동생의 여자친구가 내게 선물했던 책이다. 그들이 헤어진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내가 참 좋아했던 아이였는데... 내가 에쿠니 가오리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서 소설이 출간되자 이 책을 선물했다. 나는 표지마저 달콤한 이 책을 그 이후로 몇 번이고 다시 읽었고, 급기야 거의 매 페이지마다 먹을 것이 나온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어느 미친 날, 주황색 형광펜으로 이 소설에 나오는 음식들마다 줄을 그었다. 소설 속 먹을거리에 집착하기 시작한 것도 그 이후였던 것 같다. 아, 솔라닌! 이 책의 첫 장의 제목이 솔라닌이다. "동반 자살을 하려면 솔라닌이 딱이에요. 감자 싹에 독이 있잖아요. 왜 솔라닌이라는 이름인데, 그걸 잔뜩 키워서 조림을 해 먹으면 그걸로 끝이에요."의 그 솔라닌. 이 소설을 몇 번이나 읽은 내가 절대 잊을 수 없는 솔라닌.

 

내가 일본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현실감이 결여된 나른한 느낌이 좋아서다. 개인적으로 나른함의 끝장판은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이라고 생각하지만,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은 담담한 현실인듯 하면서도 몹시 비현실적이라 그 갭에서 오는 의외의 나른함이 좋다. 그래서 가장 좋아하는 작가를 물으면 망설임없이 에쿠니 가오리라고 말한다.

 

사토시 같은 남편은 객관적으로 밥맛이지만, 루리코가 그에게서 느끼는 울타리라는 느낌을 이해할 수는 있을 것 같다. 문득 이렇게 비현실적이고 나른한 결혼생활이 가능하다면 남편이 직장에 있는 그 시간에 질투를 할 만큼의 사랑이 없다해도 결혼을 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은 그런 울타리 속에 안전하게 머물고 싶을 때가 있다.

지키고 싶은 사람에게는 거짓말을 하게 되는 거라고 말하는 루리코. 사토시와 루리코는 아야의 말처럼 정말 이상한 커플이지만 각자에게 애인이 생긴 이후로 서로에게 더 충실해진다. 사토시는 시호를 만날 때마다 루리코의 장점을 생각하게 된다고 했고, 루리코는 하루오와 잘 때마다 사토시에게 돌아가고 싶어진다. 결국 집으로 돌아와 함께 한다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던 루리코의 그 말이 한편으로 이해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나른한 비현실 속에서라면 백번이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사람도 사랑하는데, 다른 사람은 또 다른 이유로, 또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하게 되어 버리는 현실. 결국엔 애인의 머리채를 잡아채거나, 험한 꼴 보이며 서로를 잡아먹을 듯 증오하고 발악하는 우리네 막장 드라마보다 왠지 어른스럽게 느껴졌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기반으로 하는 관계에서 현실을 깨지 않을 정도의 균형을 맞출 수 있다는 건 몹시 비현질적이기에 물론 이 소설은 굉장히 짧은 한 시점만을 보여주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몇 번이나 읽어 결말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계속 머릿속에선 모든 사실이 드러나고 상처받고 파탄에 이르는 결말을 상상하게 되어서 지금껏 내가 보아온 세상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생각해 보았다.

 

배경음악은 조금 전부터 스팅의 노래로 바뀌고, <Fragile>과 <Mad about you>와 < If you love somebody set them free>가 흘러나온다.  -38p.

 

지금껏 모르고 지나쳤는데, 이 노래들도 괜히 등장하는 게 아니었더거다. 소설이라는 건 참 멋진 것이라고 느끼는 발견.

에쿠니 가오리가 비평가들이 논하는 류의 위대한 소설가는 아닐지라도 내게는 나의 세계를 형성하는데 굉장히 큰 영향을 미쳤기에 존경한다. 내겐 선망의 대상인 거의 유일한 작가이고, 연애 이야기엔 단연 최고의 이야기꾼이라고 생각한다. 읽을 때마다 일본어 원문으로 읽어보고 싶어 일본어를 배워보고 싶은데, 10년이 넘도록 생각만 하고 있으니 내가 발전이 없는게로구나 싶다. 언젠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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