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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만한 젊음의 날들

38_무소유

by 또NEW 2015. 4. 20.

 


무소유

저자
법정 지음
출판사
범우사 | 2004-05-0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인생의 참 진리를 전하는 법정 스님의 대표작! 지나치게 소유에...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내가 원한 건 오래전 회색 표지의 2000원 짜리 범우문고 <무소유>였는데.... 아무리 오렌지색을 좋아한다 하지만 이 오렌지색 표지의 <무소유>는 너무 낯설잖아. 중학교 때였나 엄마가 읽던 <무소유>를 읽은 이후로 몇 번을 잃어버리고 다시 사고를 반복했던 이 책을 올 해 들어 이상하게 읽고 싶어져서 찾았더니 눈에 띄지 않았다. 책장 깊숙한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겹겹이 쌓아둔 책장을 뒤적일 엄두가 나지 않아 한 권을 사야겠다 했는데, 법정 스님의 유언에 따라 더 이상 출판하지 않는 이 책의 가격은 중고서점에서 천정부지로 치솟아 있었다. '무소유'라는 책 제목이 무색하게 갖고 싶어져버린 이 책을 구하기 위해 중고서점 몇 군데를 뒤적이다가 새 책을 판다기에 만 원을 주고 이 책을 샀다. 익숙한 회색의 <무소유>를 갖고 싶었는데 오렌지색을 만나게 되어 다소 실망했으나 책 내용이 중요한 것이라며 위안을 삼고 책을 읽었다. 그리고 회색이든 오렌지색이든 소장가치는 충분하다.

 

너무 오래 전 읽었던 책이라 몇몇 교과서 지문으로 공부했던 것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낯설었다.

일단은 스님의 '무소유'는 물건을 갖지 말라는 무소유가 아니라 집착을 갖지 말라는 것이다. 물론 물건이 많아지면 집착이 많아지니 물건을 줄이는 것이 무소유의 정신과 맞닿아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요즈음은 워낙 물건이 많고, 귀하게 여기지 않다보니 물건이 많아도 신경쓰는 물건이 그에 비례해서 많아지는 건 아닌 것 같긴 하지만, 반대로 꼭 가져야 할 물건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갖고 싶은 바람이 생겼다. 그래서 요즘은 무언가 하나를 새로 사면 두 세 개를 버리는 걸 습관으로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걸 실천하면서 내가 얼마나 쓸모없이 갖고 있는 게 많은 지 새삼 깨닫게 되었고, 앞으로 물건을 살 때 더 신중해지자 다짐하게 된다. 이건 내가 바이블로 삼고 있는 도미니크 로로의 책 <심플하게 산다>의 핵심과도 같은 것이다.

 

똑같은 조건 아래서라도 희노애락의 감도가 저마다 다른 걸 보면, 우리들이 겪는 어떤 종류의 고와 낙은 객관적인 대상보다도 주관적인 인식 여하에 달린 것 같다. 아름다운 장미꽃에 하필이면 가시가 돋쳤을까 생각하면 속이 상한다. 하지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가시에서 저토록 아름다운 장미꽃이 피어났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감사하고 싶어진다.

                               - 너무 일찍 나왔군 中 

 

지나간 성인들의 가르침은 하나같이 간단하고 명료했다. 들으면 누구나 다 알아들을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학자라는 사람들이 튀어나와 불필요한 접속사와 수식어로써 말의 갈래를 쪼개고 나누어 명료한 진리를 어렵게 만들어 놓았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자기 자신의 문제는 묻어 둔 채, 이미 뱉어 버린 말의 찌꺼기를 가지고 시시콜콜하게 뒤적거리며 이러쿵저러쿵 따지려 든다. 생동하던 언행은 이렇게 해서 지식의 울 안에 갇히고 만다.

이와 같은 학문이나 지식을 나는 신용하고 싶지 않다. 현대인들은 자기 행동은 없이 남의 흉내만을 내면서 살려는 데에 맹점이 있다. 사색이 따르지 않는 지식을, 행동이 없는 지식인을 어디에다 쓸 것인가. 아무리 바닥이 드러난 세상이기로, 진리를 사랑하고 실현해야 할 지식인들까지 곡학아세와 비겁한 침묵으로써 처신하려 드니, 그것은 지혜로운 일이 아니라 진리에 대한 배반이다.

얼마만큼 많이 알고 있느냐는 것은 대단한 일이 못 된다. 아는 것을 어떻게 살리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인간의 탈을 쓴 인형은 많아도 인간다운 인간이 적은 현실 앞에서 지식인이 할 일은 무엇일까. 먼저 무기력하고 나약하기만 한 그 인형의 집에서 나오지 않고서는 어떠한 사명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 인형과 인간 中

 

<법구경>에는 이런 비유가 있다.

"녹은 쇠에서 생긴 것인데 점점 그 쇠를 먹는다"

이와 같이 그 마음씨가 그늘지면 그 사람 자신이 녹슬고 만다는 뜻이다.

우리가 온전한 사람이 되려면, 내 마음을 내가 쓸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우연히 되는 것이 아니고 일상적인 대인 관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왜 우리가 서로 증오해야 한단 말인가. 우리는 같은 배를 타고 같은 방향으로 항해하는 나그네들 아닌가.                                                             - 녹은 그 쇠를 먹는다 中

 

 

특히 좋았던 글 중에 곱씹어 봐야 할 몇 가지를 옮겨 보았다. 이 책은 70년대 초에 쓰여진 글을 모은 것인데 글을 읽다보니 그 시절과 지금에 달라진 건 세상의 겉모습 뿐이고, 그 당시에도 고쳐져야 했던 나쁜 관습들만 그대로 이어져 왔구나 싶어 헛웃음이 나왔다. 법정 스님이 돌아가시기 전, 그러니까 최근의 글들이 읽힘이 좋고 자연스럽긴 하지만 근 40년 동안의 스님의 글의 맥락은 큰 변화는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자신을 비춰볼 수 있는 크고 튼튼한 거울 같은 큰스님의 글이 참 고맙다.   

이젠, 스님이 그렇게 아꼈던 <어린왕자>를 스님의 안내를 곁에 끼고 읽을 차례다. 그리고, 어느 날 <아름다운 마무리>를 읽으면 딱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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