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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만한 젊음의 날들

36_일방통행로

by 또NEW 2015. 4. 15.

 


일방통행로

저자
발터 벤야민 지음
출판사
새물결 | 2007-07-2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벤야민의 아포리즘적 사유와 몽타주적 글쓰기의 전범을 보여주는 ...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도서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가 맞은편에 '처녀인 채로 접혀 있는' 것으로 보이는 이 책을 집어 들었다. 발터 벤야민을 아는 건 아니고, 강신주 박사님의 <상처받지 않을 권리>에서 <아케이드 프로젝트>와 <일방통행로>를 만났던 정도였다. 읽어볼 생각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책을 펼쳐보니 길지 않은 산문글이라서 하나 둘 읽게 되었고 어느새 본격 읽고 있더라. 책의 제목인 '일방통행로'도 감이 잘 오지 않는데 '사유의 유격전을 위한 현대의 교본'이라는 무슨 말인지 모를 부제까지 달고 있었다. 사유의 유격전? 유격전을 검색했다. 내겐 게릴라전이라는 말이 더 익숙하다. 사유의 게릴라전이라고 다시 이름을 달고 나니 왜 이런 부제를 붙였는지 이해가 가기도 한다. 정말 어디로 튈 지 모르는 게릴라 같은 생각들의 모음이다. 늘 이런 식의 사유에 잠겨 생활한다면 정신병원에서나 만나게 되지 않을까. 몇 번이나 반복되는 꿈 이야기는 프로이트가 흥미로워 했을 것 같기도 하고.

 

내게 이 책은 시작은 일종의 지적 허영심 같은 것이었다가 꽤 흥미로웠다가 절반이 넘어가는 시점부터는 던져버리고 싶은 것이었다. 위안이 되는 건, 프랑크푸르트 대학 교수직에 지원했을 때 "단 한 줄도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교수직을 거절당했던 그의 과거를 볼 때, 이해가 안 되는 건 나뿐만이 아니라 당대 엘리트들도 단 한 줄도 이해하기 힘들어했다는 것이다.

 

일단은 읽는 내내 각 산문에 달린 제목이 의미하는 건 도대체 뭘까 고민을 해야했다. 도무지 글의 제목과 내용과의 관련성이 없었다. 페이지 속에 제목과 본문과의 물리적인 빈 공간 이상의 분열을 시작부터 끝까지 거의 매번 느껴야 했다. 이 책을 소화할 깜냥이 없는 것이라고 자책하면서 화려한 수사들과 풍자인지 진실인지 헷갈리는 '메뚜기 떼 같은 문자'들을 읽어나갔다.

 

운문으로 구성되고 단지 뒤의 한 부분에서만 리듬을 흐트러뜨리는 복합문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한 가장 아름다운 산문을 만들어낸다. 이런 식으로 연금술사의 방의 벽에 있는 작은 갈라진 틈을 통해 한 줄기 빛이 들어와 각종 결정, 구슬, 삼각형을 반짝이게 하는 것이다.

 

 

내가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추리소설의 실내 가구양식'에 대한 부분과 '독일 인플레이션 일주'라는 부분과 잡지 코스모폴리탄의 한 섹션에서나 볼 법한 '책과 매춘부의 공통점'에 관한 고찰이었다. 특히 '독일 인플레이션 일주'는 1923년.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2차 세계대전 이전의 망국으로 치닫던 독일의 모습을 외부인의 눈으로 관찰하고 있는데, "사태가 이대로 계속 진행되지는 않겠죠"라는 일반 시민들의 안일한 낙관에서 시작해 지성의 몰락, 적나라한 빈곤, 돈의 지배, 단절된 인간관계를 주시한다. "이 나라의 테두리 안에 갇혀있는 사람들은 인간다운 인격의 윤곽을 포착할 수 있는 시선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들 눈에 모든 자유인은 기인처럼 보인다"라고 했는데, 그 모든 구절에서 2015년의 대한민국을 느꼈기에 아팠고, 두려움 마저 느껴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 봤다. 그 모든 것들을 겪어낸 지금의 독일을 떠올려 보면, 정말 독일이라는 나라는 대단한 나라인데 그 원동력이 무엇인지 파헤쳐보고 싶어질 정도로 호기심이 생겼다.

 

이후엔 좋은 산문을 쓰는 법에 대해서, 비평가에 대하여, 콩코르드 광장의 오벨리스크에 관하여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덧 기억조차 나지 않는, 읽은 듯 읽지 않은 것 같은 내용들이 이어져서 내 정신마저 어지럽혔다. 뭔가 나도 저자를 따라 그 일방통행로를 함께 걷고 싶었는데, 책 아래 펼쳐 놓았던 국어 문제집의 기미독립선언서보다 더 읽기가 힘이 들었다. 정말 그가 어디선가 언급한 '메뚜기 떼 같은 문자들'이라는 표현은 이런 게 아닐까 하며 기막힌 표현이라고 되내었을 뿐.

 

 

포스트를 쓰기 전 검색을 해 보니 오마이스쿨에 강신주 박사님의 <발터 벤야민의 일방통행로 따라 걷기>라는 강좌가 있었다. 믿고 듣는 강신주 박사님의 저 강좌를 들으면 나도 이 정신분열적인 텍스트를 제대로 이해하게 될까 하는 욕심도 났는데, 세상엔 아직 내가 읽지 못한 아름답고 친절한 텍스트도 참 많으니까 일단 지금 읽고 있는 친절한 법정 스님의 <무소유>나 마저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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