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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만한 젊음의 날들

드디어 도토리묵

by 또NEW 2014. 10. 10.

​지난 주말, 태풍의 영향인가 뭔가해서 전날 미친 바람이 불었었다.

별 생각없이 뒷산에 운동하러 올라갔다가 커다란 도토리들이 엄청나게 떨어져 있는 것을 목격한 우리 모녀. 갑자기 2차 도토리 원정대가 되어버렸다.

도토리를 넣을 데가 없으니 주머니랑 후드티 모자에다가 도토리를 잔뜩 주워왔다.

도토리를 따는 게 아니라 줍는 게 맞는 것이라는 것을 제대로 증명했다고나 할까 ㅋㅋㅋ

전날 미친 바람에 아이들이 모조리 떨어졌나보다. 다람쥐가 왜 욕심쟁이 이미지를 갖게 되었는지 깊은 공감을 하며 다람쥐 밥을 잔뜩 훔쳐왔다.

 

 

맙소사. 지난번에 도토리 안에 벌레가 너무 많은 것을 발견했던 엄마는 도토리를 모조리 껍질을 까서 도토리묵을 만들겠다고 각오를 다지셨다. 저 많은 도토리를..... 까기 시작했다.....

멀쩡하게 잘생긴 도토리 속에 벌레들이 엄청 많았다...... 사람들처럼 얘들도 겉만 보고는 알 수가 없는 애들이다. 근데, 이거 언제 다 까냐? ㅠ.ㅠ

 

왜 인터넷 한 번 뒤져볼 생각을 못했을까?

힘들게 도토리 까다가 손가락에 물집이 잡혔다고 그랬더니 나나언니가 물을 부어서 소금을 뿌려 놓으면 벌레 먹은 도토리들이 떠오른다고, 걔들을 버리고 나머지로 갈아서 도토리묵을 만드는 것이라고 알려주더라고. 헐........ ?  

 

 

어쨌든 까도 까도 끝이 없는 도토리를 까고 또 깠다. 맙소사.

이게 내 생애 내가 먹는 마지막 도토리묵이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며 이 놈의 도토리들의 옷을 가차없이 벗겼다. 엄청나게 많은 벌레들과 마주쳤고, 그 때마다 깜짝깜짝 놀래서 도토리를 집어던져 온 바닥에 벌레먹은 도토리들이 굴러다녔지만, 이 쬐끄만 벌레들에게조차 질 수 없다는 각오로 끝을 봤다. 아몬드 같이 생긴 아이들이 딱딱한 껍질 속에 들어있었다.

물론 엄마가 90%를 깠고, 나는 10% 정도 깠을까...... ㅋㅋㅋㅋ

 

물에 담가서 좀 불리고, 푸드프로세서로 갈았다. 레알 100% 홈메이드 도토리묵님 되시겠다.

 

곱게 간 도토리는 체에 받쳐 물에 거른다. 도토리묵의 전분을 뽑아내는 과정?? 면보 같은데 통째로 싸서 물 속에 넣고 주물럭 주물럭 하는 것이 더 쉬울 것 같다며.... 저러다 한 덩어리 도토리 가루를 물 속에 투하시키면, 말짱 도루묵이 뭔 말인지 알 게 된다......ㅡ.ㅡ;; 말짱 도토리묵이라며!!!

 

한 대야의 도토리물과 모래같은 도토리 가루로 분리되었음!!

​​​​​​

 

가만히 놔두면 저렇게 시뻘건 물과 밑에 가라앉은 앙금으로 나뉜다.

 

 

생전 처음 도토리묵을 만들어 보는 우리 모녀는 과연 농도를 맞출 수 있을지 걱정을 하며...  시뻘건 물은 버리고, 앙금에 물을 좀 부어 가스렌지에 올리고 휘젓기 시작. 엄청난 속도로 휘젓고 있는 것처럼 사진은 보이지만.... 몹시 여유있으신 어머니의 손놀림이었다며. 둘이 번갈아가며 팔이 아플 때 까지 젓다보면 빡빡해지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집안은 온통 삶은 밤 향기로 가득.

갑자기 도토리를 왜 꿀밤이라고 부르는지 깨달음을 얻음.

 

그런데 이거 젓고 있다보니 어디서 많이 보던 비주얼인데..... 얼그레이쨈을 만들던 때가 급 떠오르며 이거 내 얼그레이쨈이랑 비슷하게 생겼는데? 싶다. 그 당시에도 이렇게 미친듯이 저었는데, 그 컬러감이나 질감이 이거랑 거의 흡사!!! 맛도 없는 도토리묵 말고 달콤고소한 스콘에 얼그레이쨈을 척 올려서 한 입 크게 베어 물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 멈추고 저어야 한다.

 

 

보글보글 기포가 올라올 때까지 끓이면 된다고!!!

 

도토리묵 완성. 동그란 그릇마다 잔뜩 부어두고, 큰그릇 작은그릇 도대체 몇 개를 만든건지....

다행히도 물조절에 성공했는지 그럴듯한 도토리묵이 되었다.

강력한 떫은 맛에 몸을 배배꼬던 우리 모녀. 엄마는 완성된 도토리묵을 물에 투하. 거의 반나절을 전신욕을 시켰다. 그랬더니 목욕탕에 오래 있다 나오면 손가락 끝이 쪼글쪼글해지듯이, 이 아이들도 표면이 쪼글쪼글해졌다 ㅋㅋㅋㅋㅋ 괜찮다, 쪼글이 안보이게 뒤집으면 된다!

​​​​​

 

캬~ 도토리묵이 완성.

그냥 뭉텅뭉텅 썰어서 양념장 올려서 먹기도 하고, 묵무침으로 만들어 먹기도 하고.

 

 

난 단 하루 먹고 질려버린 도토리묵.

이모네도 갖다 주고, 옆집에도 나눠 주고, 엄마 친구들도 나눠 주고...

연휴 맞은 동생이 내려와서 자기는 도토리묵 좋아한다며 잔뜩 먹고 가고.

그렇게 먹고도 아직 남아있는 도토리묵. 몸 속에 중금속 성분을 배출하는 기특한 역할을 한다고 하니까.... 내 생애 마지막이 될 도토리묵을 꾸역꾸역 먹어야겠다.

엄마랑 다짐하길, 앞으로 혹여나 묵이 먹고 싶거든 메밀묵을 먹자며 ㅋㅋㅋㅋㅋ

 

이로써 도토리묵 원정대 활동은 영구 종료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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