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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만한 젊음의 날들

비 내리는 오전, 선인장과 하루키

by 또NEW 2014. 7. 3.

 

 

비가 오면 생각 나는 노래, 에피톤 프로젝트의 <선인장>

아마도 인트로에 들리는 물방울 소리 때문일텐데, 그래서 빗소리가 듣고 싶어지면 이 노래를 듣는다. 대개는 남성 보컬보다 여성 보컬의 노래를 듣는 걸 좋아해서 주로 심규선 버전의 선인장을 듣지만, 종종 외로운 느낌이 들 때 차세정 버전의 선인장도 좋다. 그치만 차세정의 목소리는 뭔가 공중에 흩어져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에 한 번만 들으면 텅 비어버린 느낌이 들어 한곡 반복으로 설정해두고 반복에 반복을 해서 여러번 들어야 채워지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주로 심규선 버전의 선인장을 듣는다.

 

  

 

 

 

 

밤에 잠이 오지 않아서 새벽까지 책을 읽었다. 며칠 째 끙끙 앓으면서 읽던 이성복 시인의 시집을 마저 읽고, 오랜만에 하루키의 책을 집어들었다. 요즘엔 원작대로 <노르웨이의 숲>이라고 하나본데, <상실의 시대>를 읽은 세대인 내게는 아무래도 하루키는 <상실의 시대>다. 문학이라는 건 교과서에 실리는 고전들 위주로만 알던 내가, 거의 처음 접했던 현대소설이 하루키의 소설이었을까. 새내기였던 그 무렵 하루키는 우상같은 존재였다. 비슷비슷한 느낌의 소설들에 어떤 걸 읽었고 어떤 걸 읽지 않았는지 구분도 가지 않을 정도였지만 읽고 또 읽었다. 아무래도 가장 하루키다운 건 초기 단편들이라고 결론 지었고, 이후 아멜리 노통, 알랭 드 보통, 에쿠니 가오리, 폴 오스터, 요시모토 바나나 등의 다른 작가들을 읽었지만 <상실의 시대>는 종종 생각이 나서 펼쳐보곤 했다.

 

'그것은 부드럽고 평온하고, 그리고 어디로 간다는 목표도 없는 입맞춤이었다.'

지금껏 한 번도 주의깊게 본 적 없었던 이 문장이 마음에 들어 노트에 적어 두고, 이 책이 아무리 널리 사랑을 받을지라도 과연 고전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읽을 때마다 놀라운 책이 있는 반면, 서른이 넘어 처음 읽는 이 책은 지나치게 간질거렸고, 특유의 나른한 느낌도 이젠 없고, 대체로 공감이 가지 않았다. 그토록 아꼈던 소설인데... 사랑은 변한다. 사람이 변하니까.  

 

존 레논의 <Norwegian wood>를 흥얼거리며, crawled off to sleep in the bath~ 이 부분에선 어김없이 웃음이 터지고, 이 노래 참 야릇해서 소설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와타나베가 미도리의 아버지 병문안을 가서 아작아작 오이를 김에 싸서 간장에 찍어 먹는 부분인데... (어쩌다 이 기묘한 장면을 좋아하게 된 건지 잘 모르겠지만, 난 하루키를 좋아하면서 동시에 오이를 좋아하게 되어 내 첫 블로그 이름을 '오이맛 사탕을 원해'라고 짓기도 했다.) 어쩌면 오래 동안 다시 읽지 않을 이 소설과 이별하는 심정으로 내가 꼽은 최고의 장면을 기다리며 책장을 넘기고 있다.

 

빗소리, 노랫소리, 책장 넘기는 소리.

조용한 오전의 풍경.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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