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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만한 젊음의 날들

장마철 로망, 비옷 입고 산책하기

by 또NEW 2014. 7. 7.

며칠 전에 비가 퍼붓던 밤에 문득 알록달록한 비옷을 입고 비를 온 몸으로 맞으면서 산책을 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이 말을 들은 나나언니는 현실은, 얼굴로 비가 쏟아진다고 충고했지만, 다시 비오는 날이 되니 비를 맞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집안을 뒤져보니 한 번 입고 넣어둔 일회용 비닐 비옷이 있어 이거라도 입어보자 하고서는 비옷을 꺼내입고 집을 나섰다. 얼굴로 비가 쏟아지는 걸 막기 위해 모자를 눌러 쓰고, 집 앞산으로 GoGo.

 

 

 

야심차게 나섰지만 아무도 없는 어두컴컴한 비 뿌리는 산을 오르자니 입구에서 살짝 겁이 났다. 시작을 했는데 끝을 보자며 등산 시작. 내 느낌으론 산 속에서 노래를 들으며 걸으면 현실감이 사라지므로 귀에 꽂은 이어폰도 빼고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땀범벅이 됐다. 온 몸에 땀이 비처럼 흘렀다.

또록또록 몸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느끼며 유유자적한 산책을 꿈꿨던 나의 로망은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땀범벅이 된 몸으로 산을 오르는 의지의 다이어터 몰골로 처참하게 끝이 났다.   

 

 

내 멋대로 정한 앞산의 정상은 앞산 전망대. 여기까지 올라 "야호"를 외치고 나면 내려간다. 오늘은 아무도 없어 진짜 신나게 "야호"를 외쳤다. 

전망대의 전경은.... 아, 공해의 도시 울산.

그래서인지 산 속에 들어와도 피톤치드의 기운을 전혀 느낄 수 없다.

너무너무 더워서 비옷을 벗고 안에 입은 바람막이 점퍼를 벗어 가방속에 넣었다. 비닐 비옷이 맨살에 닿으니 짝 달라붙어 돌돌 감기고... 내려 가는 길엔 더 죽을 맛.   

아직도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먹어 봐야 아는 나는, 고생을 사서 하고 있다.

아놔, 로망따위 개나 주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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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물기 머금은 꽃향기가 퍼져왔다. 자잘한 꽃들이 잔뜩 피어있었다. 나무에도, 땅에도.  

분명히 "뻐꾹뻐꾹"으로 들리는 새소리도 들렸다. 진짜 뻐꾸기인가.

오늘 흙 바닥에는 개미도 없다. 산에 오면 발아래 늘 밟을까봐 겁나고, 간지러운 느낌의 개미가 싫었는데 비가 오니 이 아이들도 안마주쳐 좋다.

햇빛이 뜨겁지 않아 눈부시지 않고, 흙먼지가 일지 않아 좋다.

알록달록 사람들이 북적이며 눈을 현혹하지 않아 좋다.

 

좋은 점들을 애써 찾아가며 산을 내려와 횡단보도 앞에 서 있으니 지나는 사람들의 눈길이 느껴진다. 아, 비닐 비옷 아래 빨간색 티셔츠 대신에 스킨색 나시를 입었어야 제대로 섹시할 뻔 했다며 혼자 쿡쿡 웃으며 나의 죽은 센스를 원망하다가 문득 떠오른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의 한 장면. 비오는 날 아내가 비옷을 입고 현관을 들어왔지. 비옷 속에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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