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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만한 젊음의 날들

隨處作主 立處皆眞: 수처작주 입처개진

by 또NEW 2014. 7. 2.

 

 

중국의 임제선사가 하신 말씀이라고 하는 '수처작주 입처개진'

최근에 이상할 정도로 여러번 마주치는 말이다.

취업 문제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내게 스스로 하는 응원의 말.

"어느 곳에 있던지 주인이 되고, 그 자리에서 진실하면 된다'라고 뜻을 받아들였다.

껴맞추기 나름이라고 내 마음대로 해석해서 내 상황에 맞추고 있는 것일수도 있지만, 그렇게 해서 힘이 된다면 임제 스님도 그게 답이다, 라고 하시지 않을까?

 

돌이켜보면 여러 군데 직장을 다니면서 내가 주인으로서 일을 할 수 있는 곳에서는 만족감이 컸던 것 같다. 하지만 나의 가장 큰 약점이 간호사로서 병원에서 그렇게 일하지 못했던 것.

아마 두번째 병원이었던 세브란스의 병동에서 일했을 때 그렇게 약하게 마음먹지 않았다면, 간호사로서 주인의 마음으로 일할 수 있었을 가능성이 가장 크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를 종종 하곤 한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주인의 마음으로 일을 했던 것 같고, 모두의 사랑과 지지를 받았던 시절. 내가 서툴러서 좀 더 즐기지 못했고, 매일 반복되는 오버타임에 체력이 딸렸고, 거만한 마음이 마음속 어딘가 깊이 자리 잡고 있었고, 외로웠던 시간이었다. 지금의 나라면 그 에너지를 모아 조금 다른 곳에 쓸 수 있었을텐데, 당시엔 어렸고, 그래서 서러웠다. 내가 가장 간호사다운 모습으로 내 이상에 맞는 간호사의 모습으로 일했던 시간은 짧게 끝이 났다. 우리나라도 이젠 대부분 인증제도를 거치면서 병원마다 거의 비슷한 체제를 갖춰가고 있으니까, 선진국의 여러 나라처럼 간호사 에이전시가 있어 갑자기 필요한 간호사 인력을 불러 쓸 수 있다면.... 그래서 갑자기 내게 문제가 생겼을 때 눈치보지 않고 오프를 쓸 수 있고, 아플 땐 쉬어가며 일할 수 있다면, 바쁠 때 한 명만 더 추가인력을 불러 쓸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진다면 아마 그토록 예민하게 굴면서 일하지 않아도 되고, 그 많은 유휴인력이 있는데도 간호사는 모자라는 이런 사태는 사라질 수 있을텐데.

현실을 빤히 아는데, 참 쓸 데 없고, 희망없는 이야기였다.....

 

크루즈선에서 일을 했을 때, 가장 만족스러웠던 점이 바로 그런 점이었다. Medical team은 위로 Captain, Staff Captain이 있지만, 내가 직접적으로 상대하는 boss는 Doctor 한 사람이었고, 의사와 둘이서 선내 병원을 책임져야 하는데, 전반적인 관리는 오롯이 내 몫이었기 때문에 내가 주인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 내가 모든 것을 알고, 모든 일이 다 내 것이 되었을 때, 그 때부터 진짜 Ship nurse로서 내 일에 만족할 수 있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내 일이니까 내가 챙기는 거고, 재량껏 변주 가능한 점이 좋았다. 프로페셔널이 된 기분을 한 껏 즐겼다.

 

앞으로는 그렇게 주인으로서 일을 할 수 있는, 내가 즐길 수 있는 일을 찾고 싶다. 병원에서 일하는 동안은 주로 내가 부속품이자 소모품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당연한듯 혹사되고 열심히 할 수록 소모되는 그 느낌이 가장 싫었다. 여러 가지 일을 경험하면서 장단점을 두루 경험했고, 이제는 마땅히 설 자리는 없는데 눈은 한껏 높아져버렸다.

 

늘 생각하기를, 오늘은 힘들지만 내일은 좋아질거라는 마음가짐으로 오늘의 행복을 저금하며 살았던 것 같다. 오늘 힘든만큼 내일 보상이 생길거라고 여겼다. 언젠가는 올 꿀 같은 내일을 상상하며 버텼지만, 그런 내일은 오지 않았다. '오늘의 행복 저금'이란 상품은 이자는 커녕 원금마저 갉아먹는 몹쓸 재테크였다. 이제는 오늘 행복하지 않으면 행복한 내일은 없다는 말이 무엇인지 안다. 오늘 그 어느 자리에서 어떤 나로 있든, 그 곳에서 내 삶의 주인으로서 살아야겠다. 지금의 '나'가 주인공이고, 지금의 '나'가 가장 반짝일 수 있도록, 지금의 '나'가 가장 만족하는 답을 고르는 것.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과 해야할 일의 균형을 찾는 것. 그게 참된 삶의 방식이라는 걸 가르쳐 주는 말이 '수처작주 입처개진'인 것 같다.

 

『임제록』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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