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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만한 젊음의 날들

내겐 참회의 기도, 츰부다라니

by 또NEW 2014. 6. 24.

 

나는 모태 불교신자이지만, 불교에 대해서는 잔혀 모른다. 그래도 부모님께서 열심히 절에 다니셔서 어릴적부터 자연스럽게 불교의 관습들을 몸에 익힌 것 같다. 할아버지 큰스님께 내 이름을 받았고, 주말이면 자주 깊은 산 속에 있던 절에 가서 뛰어 놀았다. 할아버지 스님이 살아계실 때 우리 집 꼬마들을 참 예뻐해주셨는데....

그래서인지 언제부턴가 힘들 때마다 절에 가고 싶다고 생각이 든다. 그런데 혼자서 기도를 하기 위해 절을 찾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방법 자체를 모르겠다. 지금도... 여전히.

 

어릴 때부터 다니던 절은 꽤 깊은 산속에 있어서 아빠가 돌아가시고 49제를 그 절에서 끝낸 이후로는 다시 찾은 적이 없었다. 새로 바뀐 주지스님도 낯설었고, 아빠가 없는 절이 더 이상 '우리'절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리 절에 계시던 주지스님이 옮겨가신 암자에는 한 번씩 가족들이 찾아 뵙는데, 몇 년전까지는 어쩌다 스님이 불쑥 핸드폰으로 전화를 주시기도 해서 깜짝 놀라기도 했고, 스님 꿈에 아빠가 보여서 기도를 올려뒀다고 엄마한테 연락이 오기도 했다. 아빠가 살아계실 때, 꽤 열심히 절에 다니셨다. 그 땐, 그 이유를 전혀 몰랐는데 살다보니 종교에 의지하고 싶을 때가 있더라.

 

<츰부다라니>가 뭔지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며칠 전, 절에 다녀오신 엄마가 내게 <츰부다라니>를 하루에 한 번씩 읽어보라고 권하셨다. 그게 뭐냐고 묻는 내게 츰부다라니의 공덕 어쩌고를 읽어주셨는데 무슨 만능주술인가 싶은 기분이 들어 처음엔 사실 꺼림칙했다. 그러다가 며칠 뒤, 뭔가 참회의 기도 같은 걸 매일 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 올 초에 절에서 받아온 책을 뒤적이다가 <츰부다라니>를 다시 마주하게 됐다. 

츰부 츰부 츰츰부... 이렇게 시작하는 다라니는 여전히 읽을 때마다 혀가 꼬이고 주술같은 기분이 들지만, 그냥 무턱대고 한 번 해보기로 했다. 108배 같은 것처럼 힘들지는 않으니까.    

 

여전히 나는 불교에 대해 모른다. 어제는 엄마가 서랍 정리를 하다가 아빠가 투병중이실 때 스님께서 아빠한테 주신 책인 거 같다며 책을 읽고 계셨다. <불교란 무엇인가>라는 얇은 책에 주지스님의 메모가 적혀있었다. 나도 읽어 보고 싶어졌다. 지금까지 내가 몸으로 느낀 불교는 따뜻한 느낌이 있었다. 그리고 아빠같은 느낌이 있다. 그 불교가 무엇인지 나도 배워보고 싶다. 종교로서든, 철학으로든 정신적으로 기댈 데가 있다는 위안이 필요한 것 같다. 요즘.

나의 정체성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불교'에 대해 이제야 알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츰부다라니>를 읽은 지 9일째 되는 날이다.

 

프로젝트명: 참회의 100일 기도

목표: 매일 <츰부다라니> 읽고 쓰기

목표기한: 100일 (2014.6.16 - 2014.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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