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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만한 젊음의 날들

체 게바라를 바라보는 시선

by 또NEW 2014. 8. 19.

2002년이 시작되던 무렵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직전 혹은 대학 입학 직전이었다.

친구가 보내온 메일을 열었는데 '체 게바라'라는 암호 같이 알 수 없는 말과 함께 별다른 설명없이 몇 장의 해골 사진들이 첨부되어 있어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해 3월, 대학에 가자마자 <체 게바라 평전>을 읽었나보다. 뽀얀 먼지를 털어낸 책의 안쪽에는 2002.3.6.이라는 날짜만 적혀있고, 감상은 없어 당시에 어떤 생각을 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당시엔 '체 게바라'라는 사람의 생에 무척 감동했었다. 20대에 나는 혁명가로서의 Che가 아닌, 인간 에르네스토 게바라의 열정적인 삶에 반했던 것 같다. 자기계발서의 목적으로 이후에도 두 세번 더 읽었는데 나도 그렇게 하루하루 있는 힘껏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었다. 고작 그 정도였다. 내게 Che Guevara라는 존재의 의미는 강렬했던 첫 '만남'에 비해 크지 않았다. 의사로서 나병 환자를 돌보았던 에르네스토의 모습을 읽었던 것이 내가 몇 번의 소록도 봉사활동을 하게 된 연관 관계가 있는 것인지조차도.... 이젠 오래 전 일이라 확신을 할 수는 없다.  

 

 

 

이번에 다시 읽고 있는 장 코르미에의 <체 게바라 평전>은 20대에 읽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신기하게 이번엔 '쿠바의 혁명가 Che Guevara'로 읽힌다. 낯설기만 한 남미 곳곳의 지명과 여러명의 라울, 로드리게스, 게바라들이 난무하는 이 책은 여전히 톨스토이의 소설처럼 어지럽게만 느껴지지만, 혁명에 방점을 찍은 독자가 된 나는 이제서야 '세계시민' 혹은 '아메리카의 시민'으로 살겠다던 그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1950년대 중반, 당시 남미는 미국의 거대 자본이 점령하기 시작했고 빈부의 격차가 커지며 노동자와 농민, 인디오들은 비인간적인 노동에 시달렸다. 의대생이던 에르네스토는 친구 알베르토와 함께 남미 여행을 하며 이런 착취의 현장을 직접 보게 되고 문제 의식을 키워나간다. 이젠 나도 이런 종류의 사회적 부당함을 인식하게 되면서 그가 꿈꿨던 반제국주의, 평등이라는 '혁명'을 이해가게 된 것이다.

체 게바라는 따뜻한 마음, 냉철한 지성을 가진 사람이었다. 특히 시에라마에스트라에서의 게릴라 'Che'가 좋았다. 농민들의 현실을 안타깝고 가슴 아프게 느끼고, 그들을 위해서 의사로, 선생님으로, 대장으로, 동료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부지런히 했던 체.

 

인터넷으로 체에 관해 찾다보니, 이런 체의 정체성이 혁명의 정당성을 위해, 혁명 이후 쿠바 정권 유지를 위해 과장되고 미화되었다는 일설도 있었다. 체 게바라가 나쁜 사람이라고는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던 나는 놀랍게도 꽤 많은 사람들이 체를 희대의 살인자라고까지 비난하는 것을 보았다. 역사는 어느 시점으로 보느냐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닫게 되었으며,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경각심을 갖게 되었다. 비판적인 사고가 왜 필요한 것인지, 지식을 공부하는 데에 정말인지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진실과 왜곡이 무엇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때에는 참으로 혼란스럽다.  

허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체를 위대한 혁명가로 기억하고 혹은 추앙하는 이유는 아마도 자신의 신념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는 것 아닐까. 당시 세상을 옳은 사회로 변화시키기 위해서 무장 행동이 필요하다고 여겼고, 목숨을 걸고 행동했다. 심지어 쿠바는 체와 어떤 연고도 없는 나라였다.

총질을 하고 싶었던 미치광이였거나, 카스트로에게 철저히 이용당했거나, 레알 휴머니스트였거나...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없고, 그는 이미 한 줌의 재가 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렸고, 그가 꿈꿨던 코뮤니즘은 나이브했으며 불가능한 이상이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세대의 일원이 되어 버린 나는 적어도 그의 신념에 대한 용기에 대해선 깊이 존경한다.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찾다가 우연히 유튜브에서 보게 된 체 게바라의 다큐멘터리. 책을 읽으며 잘 이해가 안되던 남미의 모습을 볼 수 있어 도움이 되지만, 한편으론 몇 장의 사진과 책의 내용으로 혼자 상상하던 나만의 체의 모습을 와르르 무너뜨리는 실체를 마주할 수 있게 된다. 특히 다큐에 빨갛게 물드는 남미의 지도를 보고 있으면, 미국의 입장에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를 제거할 수밖에 없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당시 체가 좀 더 현실적인 정치적 이상을 품고, 카스트로와 같은 정치적인 행보를 했다면 남미의 운명은 달라졌을까. 혹은 체의 운명은 달라졌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다큐를 봤고, 이제 책을 마저 읽어야 한다.

내 상상속의 체는 휴머니즘을 실천하던 사람이었고, 제국주의로부터 평등을 실현시키기 위해 기꺼이 게릴라가 되어 전투를 했고, 정의를 사수했고, 솔선수범했고, 호학자였으며, 매력적인 남자였다. 그러나 역사적인 인물로서 체 게바라에 대한 나의 판단은 무기한 보류해야 할 것 같다. 

아무래도 이 다음으로는 비폭력 저항을 했던 간디를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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