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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만한 젊음의 날들

스톤헨지의 기억, 비장한 마음

by 또NEW 2014. 7. 18.

 

영국의 솔즈베리에 있는 스톤헨지를 방문했던 그 날. 영국에서 이례적으로 저렇게 햇빛이 쨍쨍했었나보다. 오랜 사진들을 모아 놓은 외장하드 속에는 물론 스톤헨지의 사진이 있겠지만, 아마도 내 사진은 없을 것이다. 내 기억으론 함께 했던 동행의 사진은 내 카메라에, 내 사진은 그의 카메라에 있을 것이다. 삼각대를 챙겨온 그 사람의 카메라 속엔 함께 찍은 사진도 있을텐데... 결국엔 전해 받지 못했다. 둘이서만 떠났던 첫 여행이었는데.

 

오늘 고인돌에 관한 강의를 보다가 거기서 언급된 '스톤헨지'에 그 날의 기억이 갑자기 떠올랐다. 이제 꽤 오래 전 일이라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당시 나는 '스톤헨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 채 따라 나섰다. 소풍 가는 기분으로. 그냥 설렜다. 마냥 좋았다. 그 곳에선 더웠고, 짙은 자주색의 안내 브로셔를 읽었고 그래서 유네스코 문화재라는 것 정도는 알게 되었고, 사람들이 무척 많았고, 돌덩이들이 엄청나게 컸다는 것 정도가 기억에 남아 있을 뿐이다.

난 런던 밖의 영국의 자연에 완전히 매료되어 있었는데, 끝없이 펼쳐지는 넓은 초원, 어마어마한 해안... 스톤헨지도 그 규모로는 날 압도했던 것 같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역사 유적 1001>에 따르면, 각각의 무게가 50톤 이상 나가며, 북쪽으로 32Km 이상 떨어진 곳에서 옮겨온 돌로 만들어 진 것이라고 하니, 선사시대 유물로서 당시 기술력을 보여주는 세계 7대 미스테리 중 하나로 꼽힌다. 종교적인 혹은 천문학적인 목적으로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정확한 목적은 알 수 없다. 이 유적을 사용했던 이들이 켈트 족의 사제인 드루이드였는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으나, 오늘날의 드루이드들은 매년 하지를 맞이하기 위해 이곳에 모인다고 한다.

 

당시엔 잘 몰랐으나, 이런 대단한 장소였던 것이다.

 

포스트를 쓰면서 조금씩 떠오르는 그 때의 기억.

그 무렵 난 '제국주의'에 대해서 조금 이해했다. 왜 그렇게 땅따먹기에 집착했는지 알 것도 같았다. 땅덩이가 넓으니 스케일이 달랐다. 그리고 전쟁의 불구덩이 속에서도 지켜낸 유적, 유물들, 오래된 보금자리, 하늘 높은지 모르고 높게 치솟은 굵은 나무숲. 그런 것들을 보면서 작은 땅에 살면서 힘없이 빼앗기고 열강에 유린당했던 내 나라의 역사가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속사포같이 쏟아지던 영국인들의 영어 앞에 작아지던 나는 그렇게 마구마구 조상탓을 하기에 이른다. 그랬으면 이 악물고 더 이상 당하며 살지않겠다는 비장함을 보였어야 했을텐데, 나는 사랑을 뿌렸으니...

내가 더 위대한건가? ㅋㅋ  

 

오늘 내가 본 강의에서 도올 선생은 우리나라에 있는 고인돌은 스톤헨지의 그것들을 넘어서는 위대한 것들이라 하셨다. 난 우리나라 고인돌도 한 번 제대로 관찰해 본 적 없으면서 남의 나라까지 가서 돌덩이에 압도당하고 왔구나... 이렇게 개념 없는 애들이 돌아다니게 하고 있으니 이 나라가 제대로 굴러가면 이상한 거 아닌가. 난 요즘 뒤늦게 역사 공부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그리고 제대로 받았어야 할 역사 공부를 받지 못했음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내가 공부를 제대로 안한 건 아니냐고? 난 누구보다 열심히 학교에서 공부했던 아이였다. 그들이 만들려고 했던 아이가 아마도 나같은 아이였던 것 같다. 시키는 대로 말 잘 듣고, 시험에서 답은 잘 고르되, 스스로 생각하는 통찰력은 없는 아이들을 만들어 내어 같은 것들끼리 박터지게 경쟁시키고, 당당하게 사회에 자기 목소리를 낼 용기는 없으면서 제 밥그릇 챙기느라 지들끼리 싸우고 물어뜯고, 그러는 동안 다른 중요한 것들은 보지 못하도록, 그렇게 하향평준화 시키는 것. 이거 매트릭스 아닌가.

 

2007년의 스톤헨지는 비록 내겐 나른한 기억이지만,

오늘의 스톤헨지는 정신 제대로 바짝 차리고 살라는 돌망치 같은 거였다.

세월호 특별법이 무산되고, 희생자의 부모님들은 단식을 하고, 살아남은 아이들은 1박 2일을 걸었다. 나라 같지도 않은 내 나라가 또 한 번 부끄러웠다. 이번엔 비장함으로 반드시 뭔가를 해야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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