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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만한 젊음의 날들

도토리 따기

by 또NEW 2014. 9. 20.

​며칠 전, 동네 방앗간에 참기름을 사러 갔던 엄마는 난데없이 "우리도 꿀밤 따러 가자" 라고 하셨다. "꿀밤? 도토리??? 갑자기 왜??"

엄마는 방앗간에서 도토리를 가루로 빻는 아줌마를 만나게 된거다. 동네 뒷산에 운동하러 매일 가서 한 주먹씩 도토리를 따와서 모았는데 엄청 많아서 가루로 내어 묵도 해먹고, 부침개에도 넣고 한다고 한다. 엄마는 지금껏 어떻게 하는건지 몰라서 못했는데, 그냥 말려서 껍질째 빻아도 된다고 했단다. (물론, 아줌마들의 정보의 보고, 헬스장 정보통에 따르면 말려서 껍질을 까서 빻아야 한다고...!) 올해 뒷산에 도토리가 엄청 많이 열렸다며 동네 아줌마들의 트렌드처럼 다들 도토리를 따서 말리고 있었다.

오늘 아침, 산에는 혼자 가면 무섭고, 도토리는 따고 싶다는 엄마의 귀여운 바람이 생각나 그 정도쯤 못하겠나 싶어 아침부터 나섰다. "엄마~~ 도토리 주으러 가자!!!"

 

애초에 시작부터 우리 모녀는 동상이몽으로 출발했다. 그러니까 나는 도토리는 당연히 땅에 떨어진 걸 줍는거라 생각했고, 엄마는 당연히 나무에서 딴다고 생각했던거다.

나는 7부 운동복 바지를 입고 가벼운 마음으로 뒷산에 올랐다. 도토리가 지천이라고 하니 땅바닥에 그냥 굴러다닐거라고 순진하게 생각했던거다. 

 

 

 

 

엄마는 도토리 나무 잎사귀를 주면서 이렇게 생긴 나무를 찾아서 도토리를 따라고 했다. 헐~ "따라고? 나무에서? 떨어진 걸 주워야지 나무에서 막 따면 안되는 거 아니야?" 땅에 떨어진 건 벌레가 먹었을 수도 있으니까 나무에서 따야 한다고................ 헐.............

 

나는 바지가 짧아서 풀이 살갗에 닿으면 아프니까 나무 가까이 못가겠네, 쯔쯔가무시병에 걸리면 어떻게 하냐 핑계를 대 보았지만 별 수 없이 이내 엄마의 도토리 대탐험에 적극적으로 합류했다. 지난 봄, 실패로 끝난 엄마의 고사리 대탐험에 이어 또 한 번 동참. 백수는 고단하다. 

나뭇잎을 보고 비슷하게 생긴 나무들을 찾아서 거기에 달린 작은 도토리들을 땄다. 처음에는 안보이더니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한 두 개씩 따다보니 어느 덧 도토리 나무만 눈에 보인다. @.@

 

"근데, 우리가 다 따가면 다람쥐는 뭐 먹지? 원래 도토리는 다람쥐꺼 아니야?"

"갸들은 땅에 떨어진 것만 먹어도 배 터져."

"땅에 떨어진 건 벌레 먹은거래매..."

"다 벌레 먹은 건 아니니까."

 

어쨌든 다람쥐에게 약간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이 산에 도토리를 다 따버릴 기세로 다시 도토리 수확에 나섰다.

 

"아, 아! 아아!! 아! ㅜ.ㅜ"

산에 올라가다가 도토리 우박을 맞았다. 어떤 아저씨가 큰 나무 위에 올라가 나무를 털고, 아줌마가 그 아래서 떨어진 도토리를 줍는데 우리가 따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통통하고 실한 도토리가 하늘에서 우두두두 떨어졌다. 헐, 저 정도는 따야 도토리 도둑인거다. 우리는 저런 꾼들이 털고 간 자리에 남은 꼬마들만 따고 있었나보다. 순간 허탈한 기운이 쫘악 오르면서 동시에 죄책감이 사라지는 묘한 기분을 맛봤다. 다람쥐들아, 저 사람들이 레알 도토리 도둑들이란다.   

 

​​

 

레알 도둑들이 가져가고 남은 길 가의 작은 나무들의 작은 도토리들을 모아 '티끌 모아 태산'이 무엇인지 경험하게 해 준 도토리. 아직 두 세번은 이 만큼을 더 따와야 도토리묵 한 모 정도 나올거라고 했는데...... 또 가야 하나보다....... 과연, 도토리 대탐험은 도토리묵이라는 성공의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인가. 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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